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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가재모 중편연재소설] 에티오피아 용사와 보화고아원(제3편)
시인/발행인 가재모  |  jaemoka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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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4  08: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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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가재모 중편연재소설] 에티오피아 용사와 보화고아원(제3편)

작가 가재모

[제3편]
1935년 10월 막강한 전투기와 화력으로 중무장한 이탈리아 무쏘리니 군대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1936년 5월 파죽지세로 처들어오는 이탈리아군에 수도 아디스 아베바가 함락되고 에티오피아 군인과 민간인 27만명이 희생당하면서 나라를 빠앗기고 세라시에황제가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후 1941년 영국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물리치고 해방되어 국권이 회복되고 세라시에 황제체제가 복원되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파병을 위하여 1950년 8월 당시10개의 보병대대로 부터 차출된 1개 대대를 새롭게 편성했다.

그리고 1951년 4월까지 영국군 교관의 지도 아래 산악 지형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훈련을 엄격하게 실시했다.

이후 에티오피아 대대는 황제로부터 각뉴(Kagnew)라는 부대 명을 하사 받았다.

세라시에 황제는 당시 파병식에서 “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하고 있는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라는 이 신성한 세계 정책을 실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고 강조하고 “ 버아셔너프 터멀리셔(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Fight until you win, or die)”라고 명령했다.

세라시에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한국에 파병된 강뉴부대는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또는 “적을 초전에 격파하다” 라는 부대명에 손색없는 임전무퇴, 용감무쌍한 철인부대가 되었다.

연 파병인원 6037명중에서 전사 121명, 부상 536명에 포로는 전무했다.

강뉴부대는 화천지구 전투, 양구 인근전투, 철의 삼각고지, 요크 고지, 엉클고지 등 총 253개 치열했던 전투에서 전대미문의 놀라운 전승을 거뒀다.

한국전에 참전한 강뉴 부대 용사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바로 엄동설한, 매서운 겨울 추위와 적설이었다고 한다.

강뉴부대원들에게 아프리카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한국의 혹독한 겨울 추위는 엄청난 또 하나의 적이었다고 회고 한다.

당시 한국전쟁으로 전국토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다.
사망자도 남한 민간인 약37만명, 국군 사망 5만8천명, 유엔군 3민6천명, 피난민 240만명, 전쟁 미망인 20만명이었다.

특히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전쟁고아가 10만여 명을 상회하여 거리에는 부모 잃은 전쟁고아로 득실거렸다.”

강뉴부대는 전쟁 통에도 1953년 4월부터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고아원을 설립, 1956년 8월까지 수많은 한국인 전쟁고아들을 보살폈다.

보화고아원은 웨체포 테세마가 자대 배치된 바로 직전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무의마탁한 한국의 전쟁고아들 전쟁 통에 부모를 잃어 불쌍한 남녀 고아들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잠자던 슬리핑 백에 고아들을 잠재웠다.

빵과 음료수와 쪼코렛을 나눠 먹이며 에티오피아에 두고 온 자기 친자식을 생각하며 정을 주고 사랑으로 돌봐줬다.

부모나 가족을 잃어 굶주리고 갈 곳 없는 어린이들에게 보화고아원은 구원의 방주였고 희망이었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중 생존해서 현재 에티오피아 종교 지도자이며 한국전 당시 군종 중위였던 엠넬루 워라데 예비역 대령(82세) 등이 주축이 되어 보화고아원을 설립했던 것이다.

   
 

웨체포 테세마는 에티오피아 출국전 아디스아베바 역에서 가족과 눈물겨운 작별을 나눌 때 자기  제우디투 켄디( Zewditu Kendi)를 한시도 잊은 일이 없다.

그런 연유로 웨체포 테세마는 다른 강뉴 부대원들의 열정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보화고아원을 지원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워체포 테세마는 자신들의 봉급을 다른 강뉴 부대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털어서 보화(Bowha) 전쟁고아원생들을 먹여 살리고 영어, 산수, 한글 등 초등교육을 지도를 도왔고 의료 서비스에 참여했다.

참전용사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같이 한국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강뉴부대, 불차 올레카가 굶주려 죽은 어미의 젖을 빨던 전쟁고아, 박동화를 부대에서 친자식 처럼  사랑으로 키웠다  사진 상, 박동화, 정찰에 따라 나선 박동화, 불차올레카와 이별하기 직전부대 앞에서 기념 촬영

한국전쟁 고아를 돌보게 된 것은 1951년 겨울, 강뉴 제1차 참전용사 불차 올레카 가 영등포 길거리를 지나다 애 어머니가 총탄에 희생된 시체에서 주린 배를 채우려고 어미젖을 빨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 때 불차 올레카 는 고아를 방치할 수 없어서 가평에 주둔해 있던 부대로 데려왔고 동료 대원들과 함께 막사에서 군복을 줄여 입혀가며 손수 아이를 키웠다.

불차 올레카 박동화를 부대로 데리고 오면서 부대 내에 고아 숫자가 점차로 늘어 나면서 부대내의 제약과 한계 때문에 후일 보화 고아원이 설립되는 전기가 되었다.

불차 올레카 는 1차 강뉴 부대원으로 가장 먼저 참전해 3년 가까이 복무했다.

불차 올레카 는 박동화를 7~8살 때까지 3년 가까이 함께 지냈으니 사진을 보면 기억할 수 있을 거라면서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고 했다.

이제90세를 넘긴 그는 “한국의 아들 박동화를 다시 만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면서 평생토록 함께 부대 막사에서 찍은 빛 바랜 흑백 사진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한편 이번에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1진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역전의 용사 벨라이 베켈레 의 사연이다.

벨라이 베켈레가 소속된 미7사단의 강뉴부대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화살촉 고지 방어를 맡고 있었다.

치열한 격전을 벌이던 어느 날, 강뉴부대에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갈 곳 없는 한 명의 한국 아이가 제 발로 찾아왔다.

여섯 살이었던 고아에게 ‘슨타요’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슨타요는 곧 ‘강뉴가족’이 됐다.

강뉴 부대원들은 슨타요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온 자기들 아들처럼 물심양면으로 정성껏 돌봤다.

전선을 누비며 전우애를 나눈 슨타요와의 소중한 만남이 무의무탁했던 전쟁고아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동두천 ‘보화고아원’ 설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전장터에서 8개월이 지날 무렵 에티오피아 강뉴 제2차 파병부대가 한국에 도착했다.

그동안 보살폈던 슨타요와 아쉬운 작별을 고헀다.

강뉴전사들은 2진에게 슨타요를 맡기고 한국전쟁 1년을 마무리했다.

   
 

박동화와 슨타요가 한국 전선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참전국 군인들의 인도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벨라이 베켈레 는 70여 년 전 당시 진정한 사랑으로 돌봤던 ‘슨타요’를 생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어 했다.

   
 

워체포 테세마도 보화고아원에서 처음에는 원생들을 누구든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자기를 따라 다니고 얼굴이 약간 까무잡잡하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김한송을 볼 때마다 고국에 두고 온 어린 아들 게나나우 워체포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김한송을 친아들처럼 아끼고 보살펴 주게 되었다.

…………………………………………………………………………………
한편 대한민국이 간과해서는 절대 안되는 사안은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이었고 그 가운데35명이 전사했다.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여명,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하여 사령관이 전사하고 사단장이 포로가 되며 자기 자식들마저 참전시켜 전사 당한 장군들과 가족들이 많았던 게 미국이었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며 폐허가 돼 버린 대한민국을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인 힘이 돼 준 미국에 대해 우리는 감사하고 보은을 해야 마땅하다.

[제4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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