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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재모의 중편소설] 강류(Kagnew) 부대, 예카와 사랑의 보화고아원(제2편)
시인/ 발행인 가재모  |  jaemoka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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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7  17: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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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재모의  중편소설, 강류(Kagnew) 부대, 예카와 사랑의 보화고아원

가재모

[제2편]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7월 31일 에티오피아 ‘구르무 담보바’ 육군 이등병을 2017년 8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구르무 담보바(Gurmu Damboba) 이등병은 총상을 입고도 두 차례나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육군의 전쟁영웅이다.

구르무 담보바는 황제의 명을 받고 1951년 31세의 나이로 강뉴 부대 1진으로 파병되었다.

구르므 담보바의 참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눈과 추위를 동굴과 천막에서 버텨야만 했다.

강원도 화천, 철원 일대 700고지, 낙타고지, 요크고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그는 전투 중 허벅지와 엉덩이 관통상을 입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구르무 담보바는 고국에서 진통제로 고통과 싸우면서도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에서 고생하는 한국인을 외면할 수 없어 자신의 주특기인 무반통총 사수로서 두번째 파병에 나섰다.

구르무 담보바가 속했던 강뉴부대원들은 6.25전쟁 동안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253전 253승의 불패의 신화를 이룬 전쟁영웅들이다.

구르무 담보바를 비롯한 전쟁영웅들의 삶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순탄치 못했다.

1974년 쿠데타로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구르무 담보바를 비롯한 참전 용사들 모두가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6.25전쟁 종군기장을 수여받은 구르 담보바는 지난 2016년 9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노병 270여 명이 생존해 있다

그러나 1974년 군부 쿠데타로 셀라시에  황제가 축출되면서 하루 아침에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베바 북동쪽 “예카”, ‘코리아 사파르’라는 코리안 비리지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빈촌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돌아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정착을 도와 주기 위하여 하일레 셀라시에 (Haile Sealassie)황제가 하사한 거룩한 땅이다.

한국에서 귀환한 참전용사들은 군인으로서 황제의 총애와 국민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한국 파병에 따른 재정 압박으로 국가 경제가  어려워 졌고 설상가상으로 계속된 7년 가뭄으로 인하여 농축국가인 에티오피아는 급전직하로 빈국으로 추락했다.

수만 명이 기근으로 죽어갔고 사회는 불안해지고 멩기스투 장군이 이끄는 세력이 공산주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1974년 군부 구테타로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황제는 권좌에서 축출되고  이듬해 타계했다.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한국과도 단교가 되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 강뉴 부대는 잊혀졌다.

자유를 위해 공산군과 싸웠던 영웅들은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반동분자들이 되어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공산정권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모질게 핍박했고 온갖 차별 행각을 자행했다.

일부 장교는 쿠데타 가담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반대파에 살해되거나 수년간 투옥했다.

참전용사들은 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땅도 몰수를 당하여 풍요롭고 평안했던 마을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이 났고 사실상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현재 아디스 아베바 최빈민가에는 낡은 함석지붕 아래 약 3만여명의 주민이 처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중 5-6천명이 참전용사 후손들로 밝혀졌다..

한국마을 입구에는 에티오피아 국기와 한국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 마을표지판이 서있다.

한국전쟁, 종전 후 66년이 지났지만 참전용사들은 가슴에는 대리석에 새긴 글씨처럼 모진 세월의 풍상에도 선명하게 대한민국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에서 받은 무공훈장과 참전유물과  추억의 사진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랑스러워한다. .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참전용사 대부분은 메르샤와 같이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도 힘겨운 삶을 견뎌야만 했다.

일부 참전용사들은 귀국 후 아디스아바바에 정착해 '코리안 빌리지'를 이루고 살았는데 재 생존 참전용사 246명 중 10여 명만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십 년 전 코리안 빌리지에 뿌리를 내린 참전용사 테섬 자마리암(84)도 침실이 1개뿐인 비좁은 집에서 아내와 아들 내외, 손자, 손녀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시력을 거의 잃은 데다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는 그는 "군에서 나온 뒤 경비원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한국전에 참전해 행복했다"고 말했다.

생존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각각 1992년, 1996년 설립된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와 한국전 참전용사 용사회 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보훈처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화천군, 각 NGO 단체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국방부도 지난해 8월 에티오피아 무관부를 신설해 이들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예컨대 아디스아바바 명성병원은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면서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거나 먼 지방에 사는 이들은 혜택을 보기 힘들다.

반포지효( 反哺之孝)는 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고 인식한다.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불길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있다.

명(明)나라 말기의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한다.

곧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는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한다.

반포지효는 이밀(李密:224-287)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말이다.

이밀은 진(晉)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라고 하였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중 생존자중에는 엠넬루 워라데 예비역 대령(82세)과 같이 참전 당시 자신들의 봉급을 털어서 십시일반으로 보화(Bowha) 전쟁고아원을 설립 운영했다 .

현재 에티오피아 종교계의 지도자이며 한국전 당시 군종 중위가 주동이 되어 1953년 4월경부터 1956년 8월까지 경기도 동두천에 설립하여 운용했다.

에티오피아 참전자들은 이제 80대 노병인데 생전에 자신들이 박봉을 털어 돌봐줬던 당시 전쟁 고아들이 어찌 성장해서 자수성가해서 잘살고 있는지 근황이 늘 궁금하다고 했다.

당시 천지난만 해야 할 한국 어린이, 부모들의 돌봄이 절실한 시절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정들어 살던 집 폭격 맞아 오갈 데 없었던 불쌍한 전쟁 고아들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잠자던 슬리핑 백에 고아들을 잠재웠고 빵과 음료수를 나눠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돌봐줬다.

고아원도 참전 당시 봉급을 털어 보살폈던 한국인 고아가 2년 전 자신을 찾아와 병원에 데리고 가 진료를 받은 게 마지막이다.

참전용사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같이 한국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참전용사 협회 부회장을 맡았던 옐마 베라츄(85)는 한국전 참전 당시 찍은 사진, 한국 정부에서 받은 메달과 표창 등으로 꾸민 집안의 '작은 전시관'을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국가보훈처에서 수여한 메달을 매일 달고 다니는 그는 "한국에서 눈을 처음 봤다. 손이 얼어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을 정도로 추웠지만 한국의 자유를 위해 열심히 싸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명성교회가 2019년5월 25일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로 세워진 명성의과대학(MMC)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 의료선교 씨를 뿌린 지 25년 만에   MMC는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MMC 대강당에서 아마르 아만 에티오피아  보건부장관을 비롯한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을 열고 현지인 12명을 졸업시켰다고 밝혔다..

1993년 김삼환 원로목사는 아프리카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찾는다. 그때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방문했고 이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비용을 아껴 지역발전 기금으로 내놨다. 김 원로목사는 대신 30달러짜리 여관에 묵었다. 이때 만난 멜레스 제나위 전 총리는 에티오피아에 병원을 설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2004년 명성기독병원(MCM)이 세워졌다. 8년 후엔 MMC가 개교했다. 중간에 재정부족, 현지 행정상 문제로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명성교회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명성교회 여선교회의 특별한 헌신에 힘입어 지금은 미국 국제 보건기구가 선정한 최고의 병원이 됐다. 재정도 500억원이 들었다.

졸업생 중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도 있었다. 참전용사 후손에게 교회가 전액 지원하는 은파 장학금으로 공부한 브룩 엔게다 학생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한국전에서 용감하게 싸우셨다고 아버지로부터 늘 들었는데  한국 명성교회의 도움으로 의사가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졸업식을 ‘하나님의 의사’가 되는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MCM은 이제 제2 도약에 나선다. 병상을 현 227개에서 500개로 늘리고 간호대·공중보건대 등이 있는 종합의과대학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그래서 이번 졸업생이 교수가 되는 2030년쯤 병원과 대학을 에티오피아에 이양한다는 생각이다.

에티오피아는 최근까지 지구촌의 최빈국이지만, 동시에 가장 성장 잠재력과 발전이 기대되는 개발도상국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연합(AU) 및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 ECA)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기구의 소재지로서,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외교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1억 5백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아프리카 제2의 대국이다.

지닌 에티오피아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GDP성장률을 기록해오고 있다.

2025년경 중소득 국가로의 진입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이 과정에서 한국을 경제 발전의 모델로 설정하고, 한국 기업의 국내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어서 향후 양국 간 협력관계는 더욱 더 발전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에티오피아 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안보 등 주요 의제에 뜻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경제 및 개발 분야, 민간 및 문화교류의 활성화 등 기존 협력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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