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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재모 중편연재소설] 왼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제6최종 편)
시인/발행인 가재모  |  jaemoka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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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5  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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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재모 중편연재소설] 왼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제6최종 편)

가재모

[제6 최종 편]

신혼여행은 투하의 제안으로 이제 한국에서 정착해야 하는 제2의 고향이 될 태안의 유명한 관광지를 순회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투하는 신혼여행 첫날부터 빼어난 천혜의 풍광과 낙조와 붉게 타는 노을이 환상적인 리아스식 해안 풍광에 매료되었다.

태안반도는 톱니바퀴처럼 들쑥날쑥한 해안마다 개발된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 활모양의 해수욕장이 수십개로 면단위별로 서너개씩 즐비했다.

간척지 논, 나지막한 구릉지 밭이 펼쳐있는 전원풍경과 생계의 젖줄 같다는 갯벌이며 고요한 서해바다 수평선이 그림같이 어울어진 정녕 우화 속 꿈꾸는 설화같은 마을이었다.

깨끗한 바닷물, 갯바위마다 다라 붙어사는 돌김, 말미잘, 고동, 조개, 홍합, 굴, 성계, 전복, 조개류, 주꾸미, 낙지, 오징어, 밴댕이와 전어, 갈치, 조기가 풍성했다.

태안은 동쪽 끝은 태안읍 인평리이고 서쪽 끝은 근흥면, 가의도리의 격렬비열도가 있다고 했다.

북단은 이북면 내리 이며, 남단은 고남의 남리였다.

태안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였다.

투하의 판단에는 물론 베트남, 하롱베이의 장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56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감탄사 나오는 절경을 뽐내는 백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

내륙은 구릉지로서 많은 산지가 개간지로 개발되어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었고 리아시스식 해안은 만곡이 심하여 간척지가 개발되고 있었다.

모래사장이 유명한 몽산포, 안면도 휴양 송림, 안흥항, 모항 등이 있었다.

태안은 해양수산물의 생산지가 집중되어 있는 하늘이 내리신 보고라고 생각되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날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최승현 아버지는 베트남 며느리가 기특하고 귀여운 마음에 아들에게 덕담을 했다.

“조강지처에게 잘 해야 말년에 편하니까 명심해.”

이제 어렵게 어렵게 결혼까지 했으니 다른 여자한테 딴 눈 팔지 말고 투하와 백년해로 하라는 권고의 말씀을 해주셨다..

“ 예 아버지 그건 아버지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지 않아요”

이때 최승현 어머니가 안 사돈도 계시니 덕담은 그만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 남편의 말씀을 잘라버렸다.

몇 일 후 최승호가 궁금해서 아버지가 조강지처 이야기를 하실 때 왜 말문을 막았는지 물었다.

최승현 어머니가 어렵게 말문을 여셨다.

20여년전 당시 창궐했던 전염병으로 6살된 승현이 형이 죽었다고 했다.

내외는 한동안 대대로 자손이 귀한 집안이라서 죽은 아들 때문에 몹시 슬퍼했고 심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옆 동네 입구에 술집이 생겼고 미인인 마담이 일찍 자기 남편과 사별하고 호구지책으로 낮에는 다방, 밤에는 술집으로 장사를 했다.

그 마담은 승호 아버지보다는 연상이지만 남자답고 잘 생겼고 술 좋아하는 승호아버지를 마담이 유혹했다고 한다.

어느 날 마담이 계획적으로 술집 문 일찍 걸어 닫고 승호 아버지에게 공짜로 술 진탕 먹여서 만취시켜놓고 함께 잠자리를 해 버렸다..

최승현 어머니가 뜬눈으로 남편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새벽에 현장을 덮쳤다.

불륜 현장을 목도한 승현 어머니가 물불 가지 않고 남편도 괘씸하지만 먼저 마담의 따귀를 서너 번 휘갈기고 머리채도 휘감고 발길질도 했다.

처음에는 잠자코 당하고만 있던 마담이 반사적으로 승현이 어머니에게로 갑자기 달려 들었다.

순간 승현이 어머니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라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 팔을 뻗었는데 마담이 인중 급소를 맞고 그만 졸도해 버렸다고 했다.

그 길로 승현이 어머니는 집으로 가서 짐 챙겨 친정으로 가 버렸다고 했다.

몇 일 뒤 승현이 할머니와 아버지가 처가에 찾아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바람에 승현이 어머니가 딱 한번만 눈 감아주는 조건으로 친정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승현 어머니의 남편 바람 끼 잡는 비결은 ‘초전 박살’이라며 이것을 투하에게 지체 없이 전수해 줬다. 

투하는 예정대로 떡 두꺼비 같은 아들을 순산했다.

투하  친정 어머니는  딸이 무사히 출산했기 때문에 안도하고  그 다음 주에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최승현은 투하가 출산 후 대학에 복학했고 교직과목을 이수하여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결국 천안 소재 중학교 영어교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다.

베트남 전쟁은 1973년 1월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간 휴전, 선거를 통한 신 정부 구성과 60일 이내 미군 전면 철수에 합의했다,

그러나 1974년 1월 베트콩(NLF)과 남 베트남 정부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무력 충돌이 확대되었다.

베트콩과 북 베트남의  대규모공세로 1975년 4월30일 남 베트남 대통령 즈엉반 민이  항복함으로써 남 베트남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76년 7월2일 남북이 통합된 베트남사회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전후 통일 베트남은 많은 사회적 진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북 베트남은 통일 후, 남 베트남 정권하에서 재직했던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등에  대하여 철저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일부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장기간 구금되거나, 처형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투하 친정 아버지는 지방직 고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면직되면서 수감생활 10개월을 끝으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났다.

그 후 최승현은 장인에게 한국의 새마을운동성공사례와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관한 책자와 자료를 계속적으로 보내줬다.

투하 친정 아버지는 점차 한국에서 거국적이면서 다대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국형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전후 베트남 재건 사업에 필수적인 전략사업임을 인식했다.

오늘날 베트남이 과감한 개방과 개혁으로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대표적인 정책이 도이모이(Doi Moi) 정책이다.

베트남 말로 도이모이는 '쇄신'을 뜻하며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제기된 개혁ㆍ개방 정책 슬로건이다.

1987년 신외자법, 1988년 외국인 투자법과 외국환관리법을 제정하여 투자환경을 정비했다.

투하 친정아버지는 성공을 거둔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 한강의 기적, 중공업육성정책, 영농기술개발, 새마을운동 등을 집중 연구해서 실력을 배양했고 베트남 정부 고위층이 투하 친정 아버지의 능력을 인정, 중앙부처 국장으로 등용되었다.

1991년 제7차 당대회는 도이모이 정책을 국가 최우선과제로 재확인하여 경제개발 10개년계획 (1991~2000년)을 수립, 성공을 거뒀다.

베트남은 대한민국과 1992년에 정식으로 수교를 맺어 양 국민간에  교류가 공식적으로 재개되었다.

이후 투하 친정 어머니는 딸과 외손자를 보려고 자주  한국을 드나들었다.

또한 투하 친정 아버지도 양국 국제협력 고위급회의 단원으로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베트남은 적극적인 외자 유치 및 시장경제 도입으로 년간 6~7%의 고도 성장을 이루고 있다.

G-2, 미국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자긍심이 강한 베트남이 그 저력과 잠재능력을 전세계에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잘 자란 아들도 대학원 졸업해서 중견기업에 취직했고 신학대학원 출신인 여전도사와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이제 머리가 백발이 성성하고 양 눈가에 잔주름이 자잘한 투하는 이제 교회 은퇴 권사가 되었다.

투하는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최승현과 함께  태안으로 내려왔다.

이제 떠오르는 태양 베트남을 한국 분들이 베트남으로 부르지 말고 비엣남(Viet Nam)으로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다녔다.

2018년부터 베트남국가 축구팀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되면서 투하는 신이 났다.

오늘은 2019년 1월27일  중국 창저우,  베트남 축구팀에 불리한 함박눈이 내리는 날씨에2018 AFCU-23 축구결승전, 강호 우즈베키스탄과 베트남이 결판을 내는 날이었다.

베트남 전국민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상 첫 결승진출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응원 열기로 뒤덮였다.

투하를 비롯해 한국에 시집왔거나 근로자로 한국에 와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이날 오후부터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드디어 심판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서 결승전이 시작되었고 투하는 TV화면에서 1분 1초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전반 8분 우즈벡의 첫 골, 전반 41분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꽝 하이가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후반전 양팀이 치열하게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나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연장 후반 15분 우즈벡이 코너킥 상황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베트남은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다.

투하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 한줄기는 너무 열심히 싸워준 베트남 선수들의 투혼에 감격해서 흘린 것이고 또 한줄기는 우즈벡의 결승골이 베트남 쪽 그물을 흔들자 고개를 떨구는 베트남 축구선수들이 측은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이러한 준우승도 베트남의 역대 최고 성적이었고 눈보라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선전한 선수와 박항서 감독에게 베트남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민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9천만 베트남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쾌거를 이뤘다.  

<제 6회 최종 편 끝> 그동안의 성원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작가 가재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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