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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가재모 중편소설시리즈] 왼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제1편)
시인/발행인 가재모  |  jaemoka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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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6  1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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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재모의 중편소설 시리즈] 왼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제1편)

가재모 중편

[제1편] 월남전쟁은 전후 베트남 정부가 피아 구분 없이 과감한 개방정책과 자유시장경제를 전략적으로 지향함에 따라 지금은 우리의 뇌리속에 점차적으로 잊혀지고 있다.

한국의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3일 한국군 전투부대의 선진으로 부산을 출항하여 그 해 10월 9일 베트남의 캄란만에 전격적으로 상륙하였다.

전열을 정비하여 1965년 12월 최초의 여단급 작전인 청룡 1호 작전을 전개하면서 투이호아 지구로 이동하여 베트남의 대동맥인 1번 도로를 개척하는 한편, 월남의 3대 곡창의 하나인 투이호아 평야를 확보함으로써 베트남 주민들의 식량난을 선제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청룡부대는 언어와 풍속과 지리에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의 용맹성과 한국전쟁에서 얻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캄란과 동바틴 지역을 신속히 회복하였다.

최승현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대학  2학년을 마치고는 뺌도 먼저 맞는 게 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병대에 지원하여 입대했다.

최승현은 고된 훈련과정을 끝내고 자대에 배치되어 일병이 되었고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날 저녁식사를 끝내고 잠시 PX에 들러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 일병이 입대 동기에 같은 대대로 배치된 대학 입학 동기동창  2명을  PX에서 만났다.

월남전에 파병된 청룡 부대에서 교대 병력 충원을 위해 월남전 참전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면서 자기들은 지원한 상태인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시골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고 가야 하기에 편지로 물어봤더니 “월남 전쟁터 그 사지에 왜 가려 하느냐?”고 일단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셨다.

다만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고 사리 판단을 스스로 할 나이라서 고집을 꺾기는  힘에 부치니 살아서 네 어미 다시 볼 자신이 있으면 가라.”고 하셨다.

최승현은 “인명재천인데 죽을 놈은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라는 속담을 상기하며 참전지원서를 썼다.

이어서 월남 파병 보충대로 편입되어 훈련을 끝내고 부산에서 월남 파송선을 탔다.

베트남  청룡부대는 1966년 8월 추라이 지구로 이동했고 1967년 2월 월맹정규군의  야간기습공격을 저지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또한 유명한  베트남 차빈동 야간기습방어전투와  태로이 매복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감행하면서 추라이 지역을 평정하였다.

최일병이 베트남  청룡부대,  자대 배치된 시기는 청룡부대가 1967년 12월에 있었던  호이안지구로 이동해서 얼마 안된  과도 시기였다.

최일병은 중대 본부 작전병으로 잠시 복무하다가  상병으로 진급한 다음날  청룡1대대 참모부 작전 조수병으로 차출되었다.

청룡 1대대는 1969년 1월 대량의 군수미 발굴 작전과  그 해 6월 베트콩의 아성인 고노이섬의 완전 평정 작전도 성공리에  끝났다.

최상병은 병장으로 승진했다.

최병장은 대학에서 영문과를 다녔으므로 대대 참모부에서 통역을 도맡을 정도로 영작 실력은 남달리 탁월했다.

그러나 영어 회화는 시골 출신이라서 발음에 다소간 흠이 있었지만 반면에 히어링과 어휘력이 뛰어났다.

따라서 작전업무 통역, 번역과 한미 해병 연합 작전 시에  미군 장병들과의  회의 통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최병장은 전투시마다 작전장교와 함께 상황판을 휴대하고 무전병과 함께 대대장을 수행하는 참모부 고참 사수병이 되어 무공공훈장도 여러 번 수훈했다.

한편 청룡부대는 실전뿐만 아니라  피아간 전투기의 폭격과 화포로 인해 파괴된 베트남의 도로 등 인프라와  인근지역 재건 사업에도 현지 지자체 장들과 협력사업으로  추진했다.

또한 정훈장교를 주축으로 상처를 입은 베트남 국민의 심리적  회복과 치유해 주는  대민 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달성하여 한국과 베트남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면도 컸다.

베트남 어에  능통했던 대대 정훈 사수가 여단 사령부로 발령이 나서 급히 중대에서 차출된 후임 병이 업무를 파악하고 대응함에 있어 다소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대대 정훈장교 건의로 최 병장으로 하여금 정훈 사수와 작전 사수를 겸직하라는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져서 대민업무도 겸하게 되었다.

대대에 배속된 공병 대원과 미군에서 지원하는 건설장비를 동원해서 대민 사업을 돕는 일은 전쟁터지만 참으로 보람이 있었다.

관할 군수가 한국군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깊어서 복구협력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었다.

대대와 군청과의 대민 협력사업의  협의 과정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면서  순차 통역을 담당해주던 초등학교 교사인 “투하”를 회의 시 마다 만나게 되었디.

최병장과 통역을 담당하던 투하는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자 서서히 정이 들기 시작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둘 다 처녀 총각에 대학을 다녀본 사람들이므로 자주 만나니 보니 상호간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가슴이 설레고 점차 뜨거워 짐을 느꼈다.

한국 여자보다 적극적인 투하가 먼저 사랑을 고백했다.

최병장도 이심전심으로 먼저 사랑고백을 하려 했으나 전쟁터에 있는 군인 신분이라서 피일 차일 미루다가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최병장은 작전장교와 정훈장교의 외박 허락을 받고 투하를 밤에 은밀이 만났다.

둘은 저녁식사를 하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인근 모텔에서 꿀 맛나는 밤을 함께했다.

모텔 창 밖의 분수대 물줄기와 가로등 불빛이 한없이 흔들렸다.

1969년 8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오후였다.

정훈장교는 군청에 미리 가서 후속 대민 사업을 담당국장과 상의하겠다며 먼저 출발했다.

최병장은 작전 장교와 함께 대대에서 좀 떨어져 있는 군청에서 군수와의 면담을 하기 위해 참모부를 나와서 대기중인 차량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수류탄 안전장치 못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최병장은 졸지에  “베트콩 수류탄이다.”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육감적으로 작전장교를 감싸 안았다.

순간 엄청난 수류탄 파열음이 고막을 찌르고 화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폭발음과 동시에 무수한 파편과 화염이 일었다.

피가 사방으로 뛰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대 본부 중대병중 부상당한 병사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까지 뒤섞여 처참했다.

일대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최병장은 순간 혼절했다.

최병장은 얼굴은 멀쩡했으나 왼쪽 어깨, 왼팔, 왼쪽 허리, 둔부와  다리와 발 가락까지  한일 자를 내려 그은 것같이 화상과 파편이 박혀 피가 흘러내리는 중상을 당했다.

최병장이 순간적으로 끌어안은 작전 장교는 머리털이 약간 탔고 왼쪽 어깨가 20센치정도 찢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전신이 거의 멀쩡했다.

작전장교가 그 경황에도 대대장에게 사건 상황을 긴급히 보고 했다.

놀래서 현장에 달려 오면서 비상명령을 내리고 의무장교에 응급 처치토록 지시했다.

참모부 장병과 대대 본부중대 병사들과  무전 통신병들이 현장에 달려와서 긴급히 뒷수습을 했다.

최병장이 혼절했다가 몸통 왼쪽 팔과 왼쪽 몸통 아래가  찢어진 것 같은 통증에  눈이 떠지고 제 정신이 돌아왔다.

눈에 들어온 사건 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이 처참했다.

아까까지 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병이 현장에서 참혹하게 즉사했고 자기를 포함해서 중상자  5명, 경상자 5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의무대의 의무장병들이 응급처치 장비와 들것을 실은 후송 차량이 와서 응급처치부터 단행했다.

이어서 여단에 사고 전말이 보고되고 여단 헬기가  급히 출동해서 다낭  미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미 육군병원 응급실에서 부상 부위와 엑스레이 정밀 촬영이 끝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담당의사는 당장 최병장의 왼손 손가락  두개와  왼발 발가락 두개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미군 군의관의  전문가적 판단이니 따라야지 별수가  없었다.

자르지 않으면 안되냐고 물었으나 달리 방도가 없다고 했다.

막상 절단 수술대에 오르니 고향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면서 “사지에 왜 자원해서 가느냐?”며 극구 만류 하시던 어머니 편지 글귀가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절단 전에 주사했던 마취가 풀리고 일반병실로 돌아와 붕대로 칭칭 감긴 위로 왼팔과 왼발 다리를 만져보니 끝에서 두 개씩 잘려 버렸다.

사실은 베트남에 파병된 이후에 치열한 전쟁터에서 많은 전투에서 피아간에 엄청난 전사자, 사망자, 중상자와 경상자들을 목격했다.

최병장은 생사의 갈림길, 사명적으로 치려야 하는 전쟁터에서 대대 지휘부에 복무하는 자신은 작전병 사수라서 적의 흉탄을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한량없는 은혜에 무시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특히 평소 절친했던 운전병이 지난 수류폭탄 사고로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을 목도하면서 목숨만은 건져 주시려고 그날 사고 현장에서도 큰 바위로 막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기도를 수 십 번 드렸다.

그러나 목숨은 건졌다는 환희와 이제 두 손가락 두 발가락이 잘린, 상이용사, 장애자요 병신의 반열에 들었구나 하는 좌절감이 교차하면서 고뇌하기 시작했다.

왼편 쪽에 박혀 있던 파편도 제거되고 화상치료를 받은 다음 필리핀 클라크  미 공군기지로 가게 되었다.

필리핀으로 떠나던 날 대대 작전장교와 정훈 장교가 병원을 찾아왔다.

작전장교는 최병장이 자기를 감싸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자기가 크게 부상당하거나 죽을 뻔한 것을 최병장이 대신 몸으로 막아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자기만 멀쩡하다면서 몸을 굽혀 감사표시를 했고 극구 사양 함에도 불구하고 두둑한 흰 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대대장과 참모부, 본부 중대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성껏 모은 위로금을 주고 갔다.

그런데 정훈장교는 투아를 만나서 최병장 부상과 후송 소식을 전했다면서 투하가 최병장의 애를 임신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최병장은 투하가  자기 애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드디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를 거쳐서 대구공군 병원에 잠시 머물렀다.

이어서 몇 일 뒤 진해 해군 의무단으로 이송되었다.

해군 의무단에서 파편으로 함몰되었거나 화상이 심한 부위에 피부 이식수술을 받았다.

뒤늦게 고향집 아버지와 어머니께 전갈을 보냈다.

득달같이 달려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시집간  누나와 매형이 진해 해군 병원으로 달려왔다.

최병장 어머니와 누나는 할 말을 잃고 연신 잘린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최병장 아버지는 아들이 부모 말  거역하고 월남전 지원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것을 보고  일순 본의 아니게  부아가 치밀었다.

“가면 죽는다고 가지 말라고 너의 엄마가 신신당부했는데

월남에 왜 갔냐고? 죽을라고 작정한 것 아녀? “

“불효가 따로 없어 부모 말 거역해서 벌받은 거여.”

최병장 어머니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아이구 이 양반이  실성을 했나? 저리 비키셔”

“하마터면 죽을 뻔한 아들이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것도 하나님 은혜인데 왜 그래유? 박절하게. ”

“부상당한 자식한테, 불쌍한  아들한테  아베가 그렇게 모진  말로 가슴을 후벼 파고 대못 박고 오늘 따라 왜 그래요?”

최병장 아버지가 졸지에 코너에 몰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 아녀! 그게  아니라.. 내가 하도 속상해서 한마디 한다는 게 그만 실수했네.”

“아들 내가 잘 못했구먼 ”

“그래 아베가  미안하다.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지. 암 그렇고 말고”

누나도 매형도 거들었다.

“그래 절대 기 죽지 말고 나라가 불러서 간 거고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버지 말씀대로 천만다행이지. 하늘이 널 돌봐 준거야 .”

“맞아 장모님께서 처남을 위해 새벽기도와 수요 예배, 주일 예배에서 거르지 않으시고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을 내가 많이 봤지. 처남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장모님 기도 발이 먹힌 것이야. 안 그래? 처남!”

최병장의  잘린 손가락과 발가락이 어느덧 다 아물었다.

화상치료도 잘 되어 흉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치료가 끝났다.

최병장은 몇 일 후 해군으로부터 의병 제대증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음 제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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