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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時論] 다문화 사회 선교 전략 차원의 고부갈등 문제와 해결방안
발행인 가재모  |  jaemok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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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20: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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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時論] 다문화 사회 선교 전략 차원의 고부갈등 문제와 해결방안

1.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 도래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이주민의 역사와 함께 나타난 현상이 다문화 가정이고 다문화가정의 복합체가 바로 다문화사회이다.

1960년에 한국에는 화교 이민자가 주류를 이뤘고 이후 점차적으로 화교 이외의 다양한 이민자 집단이 한국의 산업분야에 유입되면서 다문화사회로 변모해갔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힘들고 더럽고 힘든 이른바 한국 근로자들의 기피업종인 3D업종에 외국인들의 리치 인력 시장화되면서 급속히 외국 노동자가 증가했다.

1990년 초반에는 인구의 도시 집중화와 젊은 여성층의 농어촌 기피현상으로 농촌총각과의 국제 결혼 붐이 형성되어 결혼 이민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2004년부터 정부에서 시행한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부터 미등록외국인 노동자수가 줄어들고 여성결혼 이민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2007년 중국 동포대상의 방문 취업제가 시행되면서 중국동포 노동자가 물밀듯이 유입되어 자연히 외국인노동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외국인주민의 국적은 절반 이상이 중국 출신이며 거주 목적은 근로와 가족형성이 가장 많았다.

 

행정자치부와 통계청이 11월 14일 발표한 '2015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주민 수는 지난해 11월1일 기준으로 171만 1천13명이다. 17개 시도 인구와 비교하면 전남(179만 9천명)보다 적고 충북(158만 9천명)보다 많아 10번째에 해당한다.

 

외국인주민 조사를 시작한 2006년 53만 6천627명과 비교하면 10년 동안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주민수는 2009년(111만명) 100만명 선을 넘었고 2014년(157만명)에는 15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 대비 외국인주민 비율도 2006년 1.1%였으나 2009년 2.2%, 2014년 3.1%에 이어 지난해 11월1일 기준으로는 3.4%로 급증했다.

 

 

 

행자부는 올해부터 외국주민현황 조사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외국인 주민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바꿔 조사기준 시점이 매년 1월1일에서 11월1일로 변경됐다.

 

또 '실제 거주하는 인구'를 조사하기 위해 3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외국인주민과 외국인 통계에 중복 합산되는 이중국적자를 제외하고 불법체류자 인구를 포함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주민수 171만 1천13명은 지난해 7월 발표한 174만 1천919명(2015년 1월 기준)보다 3만 906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3개월 이상 해외 체류자(29만 8천174명)와 이중국적자(6만 9천673명)를 빼고 불법체류자(14만 1천728명)를 더하면 총계는 19만 5천213명 증가했다.

 

외국인 주민의 유형은 국적미취득자가 79.7%이며 국적취득자 8.8%, 외국인주민 자녀 11.5%로 나타났다.

거주 목적은 '근로'가 66.4%로 가장 많다. 이는 외국인근로자 33.5%와 외국국적동포 12.6%, 기업투자자·특파원·불법체류자 등 기타 20.3%를 더한 수치다.

 

가족형성 목적은 25.5%로 세부적으로 보면 외국인주민 자녀 11.6%, 결혼이민자 8.5%, 혼인귀화자 5.4% 등이다. 기타 목적으로는 유학생 4.8%, 기타 귀화자(일반 귀화, 입양 등) 3.3% 등으로 조사됐다.

외국인주민 자녀의 연령대는 미취학아동이 58.8%였으며, 초등학생 31.2%, 중고생 10.0% 등 순이다.

 

외국인주민의 국적은 52.8%가 중국 출신으로 한국계 중국인이 37.1%, 중국인이 15.7%를 차지했다. 이어 베트남 12.6%, 인도권 5.7%, 태국 4.9%, 필리핀 4.8%, 미국 3.9%, 중앙아시아 3.1%, 캄보디아 3.1% 등이 뒤를 이었다.

 

성비를 보면 남성 54%, 여성 46%로 조사됐으며 외국인근로자 중에는 남성이 75%를 차지했고 결혼이민자는 83%가 여성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사회는 외국인 200만의 다문화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현재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성숙과 핵가족화가 이뤄져서 부모봉양과 경로효행 의식이 상당히 퇴색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꿨다고 해도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당연한 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차제에 룻기의 고령의 과부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이방인 과부 며느리, 룻과의 눈물나는 사랑 이야기를 소개코자한다.

 

2. 다문화가족의 대두된 일반적인 문제점과 고부갈등

농어촌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한국 부모들의 높은 자녀 교육열과 특히 농어촌의 젊은 여성층은 인터넷, 멀티미디어의 영향으로 탈농촌과 인구의 도시집중이 이뤄졌다.

농어촌의 젊은 남녀들은 공히 노동 집약적이고 노동량과 투입비용을 대비한 수익과 채산성이 낮은 농어촌보다는 도시 근로자 또는 연예인 등 인기직종을 동경하는 의식구조와 탈농어촌과 농어촌 주거 기피현상이 현저하다.

따라서 농업종사자 또는 농어촌 거주의 결혼 적령기의 총각들이 혼처 찾기가 지난하여 고령 총각이 속출함으로서 자연적으로 저출산과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초래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지차체가 행정력을 동원해서 농촌총각 장가 보내기 캠페인이 전개되고 국제결혼 중매업체가 호황을 누리며 중국과 동남아 국가 신부감들이 한국의 농촌총각과의 결혼 풍토가 확산되었다.

따라서 한국 농촌은 젊은 한국 여성 인구가 현저히 감소한 반면 외국 가임여성과 그들 자녀가 증가함으로서 다문화가정화, 다문화사회화로 변모했다.

현재 한국내 다문화의 인구 대부분이 결혼이민자, 저숙련 외국인근로자 또는 취업을 위해 입국한 해외동포가 주류를 이루고있다.

그러므로 농촌 거주의 다문화 가족이 직면한 대두된 문제점은 1)언어, 문화와 환경의 격차, 2) 종교, 풍속과 교육수준의 격차, 3) 사고와 상호기대의 격차, 4)음주와 가정폭력, 5) 부부간의 연령차이, 6) 가난의 대물림, 7) 학교 폭력과 멸시, 왕따 등 자녀교육과 배타적인 한국사회와 괴리감, 8) 고부갈등, 9) 농촌생활의 발전 기대감의 한계, 10) 농촌지역의ㅣ의료 및 교육시설의 열악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의사 소통의 문제, 전통 제례 등 한국 풍속 문화와의 충돌, 고부갈등과 상호 기대심리의 상충, 사회적 빈곤층으로 고착되는 경제적 하위 계층화가 결국 한국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종국에는 한국 사회의 갈등요인으로 증폭될 수 있다. 여기서 도출된 다문화가족의 당면문제와 해결방안을 요약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의사소통의 문제 해결 : 외국인이 이주국에 원만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 습득은 반드시필요하다. 특히 다문화 가족 여성의 경우는 한국어 습득이 고부갈등 해소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한국 사람끼리도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 부부간, 고부간, 이웃간의 갈등요인을 야기한다. 하물며 이주여성은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거나 이주여성이 비록 영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의 방법이 없다.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풀길이 없기 때문에 삶의 의욕이 떨어지며 우울증세가 쌓이면서 부부갈등 고부갈등, 가정해체로 발전하게 된다.

외국인 며느리와 시어머니간의 의사소통문제를 해소하며 또한 한국 내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지장이 없도록 지차체와 종교단체 등 주변의 다문화 가족지원센타를 최대한 이용하고 본인 스스로가 한국어 습득에 최선의 노력을 을 경주해야 한다.

2) 가족으로서의 유대감 부족 해결: 가족이 존재함에 있어서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유대감이다. 가족끼리 서로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성원간의 신뢰감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제결혼 가정에서 이주여성들은 아직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가족성원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지차체나 교회 등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다문화가족 지원센터가 남편 외에 유대감을 향상시킬 존재로 시어머니를 택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고부간의 일체감이나 유대감, 친밀함 등을 높여 위기 가정을 예방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3) 문화와 풍속 생활방식의 차이 극복 : 생활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났다면 사랑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다른 가족들과는 특별함 공감이 있어야만 서로의 생활방식의 차이를 어찌 극복할 수 있다.

4) 고부갈등의 문제

다문화 가정의 고부관계와 고부갈등은 한국인 고부관계보다 이질문화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다. 그러나 여성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 시어머니의 모성애의 발로로 한국 며느리보다 외국 며느리에 대해 관대하다고 한다.

우선 고령에 자식의 노총각 신세를 면하게 해준 외국 며느리에 대한 보답심리와 대를 잇게 해 준다는 기대감과 노후 봉양 의지 심리가 작동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시어머니의 기대심리가 상실되고 충돌 변수가 빈발하면 그런 류의 다문화 가정은 분가하거나 가정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다문화가정의 고부갈등은 부부간에 함께 설득하고 생활 태도를 바꾸거나 한국의 전통 효개념에 순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고부간에 교회나 천주교 회당에 등록 교우로 함께 참여하는 방안도 있다.

3.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賞

<가족-개인-단체 3개부문 시상>

제6회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이 11월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카나니 무인, 한수연(가족상 우수상), 권오숙(공헌상), 홈소폰(특별상), 멀얼게렐(공헌상), 취매이윈(가족상 대상), 라술메또바 나조카트(가족상 우수상), 사단법인 러브아시아(공헌상 단체) 김동인 정책실장.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다문화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취매이윈(60) 씨는 휠체어를 탄 남편과 함께 단상에 올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은 제 사랑, 한국은 제 운명이에요.”라고 말했다.

 올해로 6회를 맞은 ‘LG-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선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 다문화가족, 그들을 도운 숨은 공로자들이 모여 서로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기쁨을 가족에게 돌렸다. 다문화가족상 우수상을 받은 라술메또바 나조카트 씨(35·여)는 “항상 옆에 있어 준 남편에게 고맙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행사엔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과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신용현 의원(국민의당·이상 여가위 간사)을 비롯해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이자스민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전 새누리당 의원), 양민정 한국외국어대 다문화교육원장 등 정계 관계 학계 인사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 수상자 가족 및 친구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다문화공헌 부문>

다문화공헌상 단체 부문을 수상한 사단법인 ‘러브아시아’는 14년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법률 상담과 자립을 돕고 있는 순수 민간단체다. 2002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러브아시아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은 이주민은 26개국 출신 1만9000여 명에 달한다. 2010년에는 결혼이주여성이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대전에 ‘다문화어린이도서관’을 설립했다. 이곳에는 아시아 10개국 동화책 1만여 권이 있다. 의료지원, 문화행사, 한글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러브아시아가 특히 공을 들이는 것은 이주민의 일자리 창출 사업. 현재 결혼이주여성에게 유치원, 초등학교의 동화강사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문화 동화강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고 서빙하는 다문화 레스토랑 ‘아임 아시아(I'm ASIA)’의 문을 열었다. 현재 아임 아시아는 총 3곳. 매장 1곳당 7, 8명의 이주여성이 일하고 있다.

 임제택 러브아시아 대표(58)는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다. 앞으로 이주민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문화공헌상 개인 부문 수상자인 몽골 출신 멀얼게렐 씨(33·여)는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350명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다. 2004년 12월 남편과 결혼하면서 입국한 그가 다문화 관련 활동을 시작한 건 2009년. 그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의 도움으로 결혼 뒤 힘든 시기를 극복한 만큼 나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출입국사무소의 결혼이민자네트워크 몽골 모임 인터넷 카페 운영을 맡았다. 2010년에는 ‘주한몽골이주여성협회’를 설립했다. 정보기술(IT) 방문지도사로서 컴퓨터 사용이 서툰 이주여성을 돕고, 몽골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몽골어 신문 ‘salat’ 기자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 10개월간 삼성서울병원 국제진료소에서 몽골어 통역사로 근무하며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몽골 환자를 도왔다.

 또 다른 다문화공헌상 개인 부문 수상자인 사회복지사 권오숙 씨(62·여)는 12년간 매주 일요일마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 봉사를 해왔다. 그는 2000년대 초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소개로 경기 부천시 이주노동복지센터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틈틈이 한 봉사활동이 지금은 주말 일상이 됐다.

 그는 이주민들에게 컴퓨터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어 교육도 함께 하고 있다. 이주민들과 함께 여행, 연극 등 다양한 문화 행사에도 참가하고 있다. 권 씨는 “봉사 초기 임신부였던 한 이주여성이 어느새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됐다”며 “그 아이가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하는 걸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 부문>

 다문화가족상 대상을 받은 중국 출신 취매이윈 씨는 2009년 남편 정진선 씨(66)와 결혼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이듬해 시련이 닥쳤다. 갑자기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남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걷지 못하게 됐다. 병명도, 치료법도 알 수 없었다. 취 씨는 기초생활 복지급여와 기초연금 50만 원으로 살림을 꾸리고 남은 돈을 아껴 재활도구를 장만하는 등 남편을 극진히 돌봤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를 보며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금실이 저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며 격려했다.

 5년간의 간호 덕에 정 씨는 지난해부터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귀화에 필요한 예금 잔액 3000만 원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취 씨는 꿋꿋하다. 최근엔 요리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더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식당에도 취업하기 위해서다. 정 씨가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으니 취 씨는 얼른 “오빠(남편을 부르는 애칭)랑 결혼한 거 좋아”라고 대답했다.

 다문화가족상 우수상을 받은 파키스탄 출신 카나니 무인 씨(58)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199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왔다가 2002년 아내 변은영 씨(51)를 만나 결혼했다. 처음엔 “사업 한번 같이 해보자”며 만남을 이어갔지만 그게 ‘가족 사업’이 될 줄은 몰랐다. 이듬해 자본금 20만 원으로 시작한 액세서리 노점이 현재 어엿한 중고 농기계 수출업체로 성장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일각의 편견 탓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가족이 힘이 돼줬다. 무인 씨는 “한국에선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며 웃었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자인 캄보디아 출신 한수연 씨(28·여)는 전북 익산시의 ‘다문화 선생님’이다. 정착 초기엔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게 고작이었지만 점점 자신이 붙었다. 2012년부터 지역 내 초중고교와 대학교에서 다문화 이해 강사로 활동하며 캄보디아 문화를 강의하기 시작했다. 지역 내 캄보디아 출신 여성들과 무용단을 꾸려 경로당과 학교 등으로 봉사활동 공연도 다닌다. 최근엔 “두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며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해 연달아 합격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라술메또바 나조카트 씨(우수상)는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4명이나 낳은 다산모. 2006년 육군 부사관이었던 남편 서정완 씨와 결혼하면서 입국했고, 이듬해부턴 3년마다 가족이 한 명씩 늘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는 형제와 자매가 많을수록 좋다는 게 나조카트 씨 부부의 지론이다. 특별상을 받은 캄보디아 출신 홈소폰 씨(35·여)도 자녀 4명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4. 여성노인 효행의 최고 사례, 시어머니 나오미와 룻과의 눈물나는 사랑이야기

노령의 시어머니에게 극진하게 효도를 한 며느리의 사례는 예전에 많이 있었다. 특히 고령에 지병이 깊은 시어머니를 며느리가 극진하게 병수발까지 하면서 임종 전까지 봉양하여 효도상을 받은 며느리들의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과부 시어머니를 혈혈단신 청상과부 며느리가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봉양한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구약 롯기에 나오는 혈혈단신 과부 시어머니 나오미와 청상과부 며느리 룻과의 눈물 나는 고부간 사랑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사사시절에 큰 가뭄이 들었다. 그때 기근을 피해 보자는 생각에서 엘리멜렉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유다를 떠나 이국땅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갔다. 정착에 심혈을 기울이던 엘리멜렉이 중병에 걸려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하루아침에 처량한 과부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딛고 말론과 기룐을 모압 지방의 어여쁜 처녀들을 골라 혼인을 시켰다.

며느리는 오르바와 룻이었다. 며느리는 모두 정숙하고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하였다.

두 아들은 결혼하여 십여년동안 그럭저럭 잘 살았으나 모압지방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말론과 기룐이 졸지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에 청천벽력 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나오미는 홀로 남게 되었다.

최근 TV 연속극에 “불굴의 며느리”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뼈대있는 종가집에 3대의 네쌍 과부가 극심한 갈등 구조 보다는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사랑에의 도전과 갈등 등을 엮어가고 있으나 그런 사례는 논픽션 드라마이므로 가능한 경우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는 쌍과부도 긍휼의 대상인데 가난한 집 세쌍 과부는 연민과 불행의 극치인 것이다.

나오미는 박복한 여자인 자기신세를 한탄하면서 두 며느리와 함께 한없이 울었다.

어느날 고향사람을 통해 떠났던 고향 유다지방이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현듯 고향이 그리워졌다. 그녀는 보잘 것 없는 가재를 정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남편과 아들 둘을 땅에 묻고나니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고 모압에서 두 며느리를 데리고 더 이상 살아갈 희망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오미는 모압을 떠나 유다로 가는 마당에서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을 불러 그간에 자기를 봉양하고 자기 아들들을 열심히 잘 보살펴 준 노고를 치하하면서 이제 친정 부모에게 돌아가서 새 남자들과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려가기를 당부했다.

나오미는 며느리를 각각 끌어 안고 작별의 키스를 나눴다.

나오미는 진정 두 젊은 며느리에게 각자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한 것이다.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자기들에게 석별의 키스를 하자 그만 큰 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두 며느리들은 나오미에게 자기들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나라 고향으로 가겠다고 했다.

며느리들 입장에서도 이미 출가외인이요, 남편까지 죽고만 과부신세에 슬하에 딸린 자식 하나 없고 가진 자산도 없는 쪽박신세이기 때문에 선뜻 자기 친정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내 딸들아,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왜 따라 가려고 하느냐?” 하면서 한사코 며느리들을 새 사람, 새 보금자리, 새로운 지평을 찾아가길 소원했다.

결국 오르바는 친정행을 결심하여 나오미와 작별하고 떠났지만 룻은 자기 운명을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고 매달렸다. 룻은 “나도 어머니를 떠나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이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곡히 말했다.

룻은 시어머니인 라오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하여 나그네 같은 신세가 되는 최악의 경우 그 고달픈 삶마저 함께 나누겠다는 가슴 절절한 고백을 하고 있다.

참으로 눈물나는 사랑과 헌신의 고백이요 전대미문의 보기 드문 고부간의 고귀한 밀착된 인간관계라고 생각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생각하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하나님까지도 자기 하나님으로 가식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없는 유대 여인과 이방 여인간의 하나된 밀착과 접착의 공동체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 룻의 라오미에 대한 효성스런 봉양과 보아스와의 축복받은 결혼

나오미는 며느리 룻으로부터 뜨거운 연대감, 뜨거운 고부애, 지고지순한 효부열녀의 놀라운 사랑의 고백을 듣는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오미는 모압땅에서 남편과 두아들 마저 잃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를 알아보는 친척과 이웃사람 들에게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쓴맛의 의미인 마라라 부르라고 당부했다.

나오미는 자기가 참으로 박복한 여인이기 때문에 그리 불러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자기 친딸같이 아들처럼 사랑했다

룻이 늙은 시어머니인 자기를 낯선 타국까지 와서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자 나오미는 룻에게 기업도 물려주고 혈통도 잇게 해주고 안식할 수 있는 길을 베풀어 주려고 작심했다.

젊은 여인의 안식은 결혼이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을 곤궁과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방편으로 친척 보아스에게 룻의 장래를 맡기게 된다.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호구지책으로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 오겠다고 나오미에게 말한다. 밭에 나간 룻은 엘리멜렉 가문 사람이며 지방 부호인 보아스를 만나게 된다.

또한 보아스는 일꾼들을 통해 룻을 소개받게 된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고 음식과 물을 마시도록 배려했다. 나오미로부터 효도를 다하는 룻의 이야기를 들은바 있는 보아스는 룻을 위해 축복기도를 올리고 특히 일꾼들에게 룻을 위해 이삭을 떨어뜨렸고 시어머니께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보리 자루와 음식을 들려 보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시형제 결혼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임신능력이 없었고 며느리들의 남편감이 될 자식을 낳아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을 권했다. 룻은 자기 남편도 죽었지만 시동생도 죽었기 때문에 당시 관습대로 가까운 친척 중 서열이 빠른 친척 한 사람이나 또는 보아스 가운데 한사람과 재혼할 수 밖에 없었다.

보아스는 우선 순위가 빠른 친척을 찾아가 기업 무를 자 즉 “고엘”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성읍 장로 앞에서 재판까지 하여 절차를 진행했다.

우선권이 있던 그 기업 무를 자가 룻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자 보아스는 친족행위 수행자로서 절차를 끝내고 룻과 보아스는 결국 결혼하게 된다.

이방여인이 히브리 남자를 맞아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룻은 이제 불쌍한 과부, 가엾은 이방인 여인이 아니라 당당한 베들레헴 지방의 부호 유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보아스와 결혼한 룻은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기원한 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룻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보아스의 사랑속에 아들을 낳았다.

아기 이름은 오벳이라 지었다. 시어머니 나오미도 룻을 딸 이상으로 지극히 사랑했다.

나오미는 쓰리고 아픈 고통의 어두운 긴 터널을 룻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빠져나와 이제 희망과 기쁨의 광명한 신천지를 맛본 것이다.

착하고 착한 며느리 룻 덕분에 그 이름의 뜻대로 오벳이라는 손자를 키우며 다복한 여생을 보냈다.

끝없는 시기, 질투, 증오의 대명사인 고부관계가 이렇듯 끈끈하고 서로 격려하고 깊은 이해와 동병상련의 의지와 방패막이의 부러운 관계인 나오미와 룻의 사랑은 만고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오벳은 나중에 장성해서 이새를 낳았고 그 이새가 바로 후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다윗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니 결국 효성이 극진했던 룻은 한낱 별 볼일 없는 이방인 과부의 신분에서 일약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영광과 축복의 반열에 서게 된다.

나오미도 쪽박찬 과부로서 혈혈단신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룻의 고향 친정의 내력은 성경에서도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길은 없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신세가 처량한 청상과부 신세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과부의 심정은 과부가 안다고 보잘 것 없는 시어머니를 타국까지 따라 가서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효성을 다하는 룻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귀하게 보셨기 때문에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갚아 주신 것이다.

5. 나오미, 룻과 보아스의 믿음과 인생의 함의

여기서 룻기의 주인공인 시어머니 나오미와 이방인 며느리인 룻과의 눈물나는 고부관계와 룻의 새로운 반려자인 보아스까지 이 세사람에 대하여 심층분석을 해보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고부관계, 고부문화의 귀감으로 삼아보고자 한다.

가. 불굴과 자애스런 시어머니의 상 나오미

인생을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젊은 자녀를 앞서서 보내는 것이고 또한 사랑하는 배우자를 사별하는 아픔이다. 나오미는 이 두가지의 아픔을 차례로 겪으면서 좌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고난과 고통과 슬픔을 인내하고 절제하는 믿음의 여인이요 여장부였다.

첫째, 나오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 고향을 사랑했고 결단력이 있는 여자였다.

남편 엘리멜렉이 흉년을 피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 모압 지방으로 이민 갔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조상이 물려준 기업의 땅을 버리고 간 그들은 영적으로 기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불신하고 조상의 은공을 저버린 잘못된 행위인 것을 알고는 나오미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결심을 했다. 수구초심이다. 타향에서 기댈 언덕이 무너지고 외롭고 슬프고 좌절과 고통에 직면하면 사람은 원초적 본능으로 어머니가 그립고 추억의 고향이 그리워 귀향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둘째, 나오미는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마저 잃고 깊은 슬픔과 고통과 가난의 질곡에 빠져 들었으나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잘되면 자기 탓, 잘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고 믿는 자들도 망연자실한 좌절의 순간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만과 불평을 토로한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녀는 이런 불행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분토같이 버리고 우상숭배 국가인 모압으로 이사를 결행했던 그 자체가 여호와의 언약을 어긴 것으로 전적으로 자기 부부의 판단의 착오로 단정했다. 나오미는 그 후 여호와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갔다.

셋째, 나오미는 관대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결심이 서자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남자와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면했다.

과감히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며느리에게 각자 미래의 비전과 꿈이 있는 인생과 그들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는 관대한 마음, 열린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넷째, 나오미는 결코 좌절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여자였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는 등 설상가상으로 불행이 겹치고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살 등 경거망동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연히 버티고 일어나서 고향으로 돌아가 룻을 딸보다 더 아끼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희망을 걸었고 그 꿈은 이룬 집념의 여장부었다.

나. 무한 책임과 헌신적 효부 룻

다음으로 이방인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룻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할 때 시어머니는 물론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나오미를 따라 갔다.

첫째, 룻은 겸손한 여인이었다.

시모 나오미에게서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런 바랄 것도 없는, 별볼일 없는 늙은 과부였지만 룻은 그 늙은 시모를 모시고 고난과 가난과 이방에서 싸우면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자세인 것이다.

둘째, 룻은 신실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룻은 늙은 시모를 진정으로 공경하고 사랑했다. 또한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민족 사람이 시모인 나오미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멸문지화에 가세가 쇄락한 집안의 늙은 과부로 추락한 나오미 시어머니가 앞으로 고향에 가더라도 무의무탁한 신세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것을 인식한 며느리 룻의 측은지심은 참으로 가상하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룻은 항상 시어머니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섬기려는 각오가 된 여인이었다.

룻은 한번 맺은 인연을 천륜으로 생각한 갸륵한 효심이 있었다.

여전엔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장으로부터 효부상을 내리고 열녀문을 세우면서 후대까지 칭송하고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핵가족시대로 접어 들고 삼강오륜이 퇴색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효도 관광시켜 준다고 노부모 제주도에 모시고 갔다가 막판에 노부모를 혼자 버리고 가는 패륜적인 젊은 부부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룻은 효부의 표상처럼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룻은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을 소중한 것으로 가슴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따랐다.

넷째, 룻은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진 여자이다.

룻은 시어머니를 위하여 밭에 나가게 해달라 요청했다.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극진한 효심의 발로에서 스스로 자원했던 것이다. 그녀는 생계를 자기가 꾸려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낯선 이국땅이며 이방인을 천시하는 베들레헴에서 젊은 여성으로서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기는 사실 천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며 현대판 3D업종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다.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시대라고 하면서도 정작 국내 중소기업에서는 청년 충원에 애로가 많다고 한다. 비싼 등록금으로 대학을 나오고도 장기불황으로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대기업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추어서 일단 자기의 비전과 청운의 꿈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고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가난은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기 때문에 롯은 자기책임을 다한 것이다.

다섯째, 룻은 겸손하고 신실한 자세를 갖춘 여인이다.

이삭을 주우려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허리도 아프고 고통스럽고 핍박도 받고 멸시와 천대도 받게 된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참고 인내함으로서 승리한 인생을 쟁취한 것이다.

 

6. 결언

한국 노인들은 전통적으로 노인은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가계의 계승자로서 존경과 권위를 보장받아 왔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과 부부 중심과 자녀중심의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가족들에 의한 노인들의 보호기능이 점차 상실되어 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이행해 가면서 독거노인층이 늘어나고 고독, 소외, 질병, 생계곤란의 노인문제들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외국인 200만 시대와 다문화사회로 진전되면서 언어, 문화, 풍습, 부부간, 고부간갈등과 경제적 갈등과 마찰요인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남성대비 노년여성의 평균수명이 약 8년이 길기 때문에 노년 여성층이 날로 증가하면서 빈곤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성노인의 소외된 삶을 치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이른바 국가 및 사회 의 노령 복지정책과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지원체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령화 사회의 노인부양문제는 노령여성의 문제, 특히 독거노령여성의 빈곤퇴치 문제로 집약된다.

노인부양체계와 노인복지문제를 국가 재정에서 100% 충당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 다문화사회로의 변환과정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당면한 독거노령여성들의 심각한 현실과 애환을 직시하고 지나친 부부중심, 자녀중심의 핵가족 사고에서 벋어나 부모봉양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청명한 높은 하늘을 향해 “어머니”를 외쳐보기를 주문한다.

특히 외국인 200만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 오고 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지만 다문화가정 뿐만 아니라 한국인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며느리 룻간의 눈물겹고 뜨거운 고부 사랑 이야기를 음미해 보면서 지금 청년 또는 중년 부부들의 자기 노부모에 대한 효행지수가 얼마인지를 자가진단하여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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